– 팔라우 한국인 희생자 추념공원 조성에도…

– 보훈가족 지원과 나라사랑 캠페인으로 기억의 가치 이어가…

 

일제강점기 수많은 한국인이 해외로 강제 동원됐다. 낯선 땅에서 고된 노동과 전쟁의 참화를 겪었고, 일부는 끝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이들의 희생은 여전히 우리 역사의 아픔으로 남아 있다.

 

좋은데이는 잊힐 뻔한 해외희생동포들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민간 추념사업에 일찍부터 뜻을 함께해왔다. 그 과정에서 해외 강제동원 피해 조사와 유해 봉환, 위령탑 건립, 현지 추념행사 등을 이어온 해외희생동포추념사업회와 오랜 인연을 맺었다. 사업회는 1977년 남태평양 지역에서 발굴한 한국인 희생자 유해 5,000여 구를 국내로 봉환하기도 했다. 좋은데이는 이러한 추념사업의 취지에 공감해 관련 활동을 지원하고 참여해왔으며, 그 인연은 고(故) 최위승 무학그룹 명예회장 때 시작돼 최재호 회장까지 두 세대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은 사이판을 태평양 전선의 주요 방어 거점으로 삼고 군사기지와 활주로 건설 등에 수많은 한국인을 강제 동원했다. 정부 조사에서 확인된 1939년부터 1941년까지의 동원 인원만해도 사이판을 포함한 남양군도에서 5,800여 명에 달하며, 이후 종전까지 더 많은 한인이 동원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폭격과 굶주림 등으로 희생됐다. 오늘날 대표적인 휴양지로 알려진 사이판에는 이처럼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가 함께 남아 있다.

 

고(故) 최위승 명예회장은 고(故) 이용택 해외희생동포추념사업회 회장과 함께 마산에서 제작한 사자상 두 기를 사이판 현지로 운반해 ‘태평양 한국인 위령평화탑’ 앞에 설치했다. 고국을 바라보도록 세워진 위령평화탑 앞의 사자상에는 타국에서 희생된 한국인 영령을 호위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후 최재호 회장이 그 뜻을 이어받았다. 최 회장은 해외희생동포추념사업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현지 추념행사에 참석하는 등 희생동포들의 역사를 알리고 넋을 기리는 활동에 오랜 기간 참여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2005년 팔라우공화국에 조성된 한국인 희생자 추념공원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팔라우에는 약 6,000명의 한국인이 징용·징집됐으며, 이 가운데 2,000여 명이 중노동과 굶주림 등으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된다.

 

희생동포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추념공원에는 추념평화기원탑과 팔각정, 태극마당 등이 마련됐다. 좋은데이는 당시 공원 조성을 후원했으며, 최 회장도 현지 추념행사에 직접 참석해 희생동포들의 넋을 기렸다.

 

최재호 회장은 당시 “우리가 아니면 일제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간 동포들의 넋을 누가 위로하고 기억하겠느냐”며 “과거의 아픔을 기억하는 것은 다시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려는 노력은 현재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을 위한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좋은데이는 ‘보훈가족과 함께하는 행복한 동행 도네이션 릴레이 캠페인’에 참여해 기부금을 전달하고, 좋은데이 제품 라벨과 나라사랑 캠페인을 통해 보훈의 의미를 일상에 전하고 있다.

 

좋은데이가 세대를 이어 실천해온 나라사랑의 중심에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이들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 자리하고 있다. 좋은데이는 앞으로도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고 그 가치를 지역사회와 다음 세대에 전하는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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